학생성명문
2026-06-06 · 조회 74
첨성의 불빛으로 무능한 선관위를 비추고, 복현의 기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자.
첨성의 불빛으로 무능한 선관위를 비추고,
복현의 기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자.
2026년 6월 3일, 대한민국 선거사(史)에 지울 수 없는 치욕의 한 줄이 새겨졌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 당일, 서울 송파구를 비롯한 서울 시내 십여 곳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나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사상 초유의 ‘참정권 박탈 사태’가 발생했다. 주권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신성한 현장에서 고작 종이 한 장이 부족해 민주주의가 중단되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경북대학교는 서슬 퍼런 독재의 칼날 앞에서도 결코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시대가 어둠에 잠길 때마다 대구 지역 학생운동의 최전선을 지켜온 의로운 지성의 요람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청년들이 복현의 들판에서 어깨를 걸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 마이크를 잡았으며, 그 자리에서 우리 대학은 언제나 시대를 깨우는 학생운동의 거점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중심축이었다. 선배들이 청춘을 바쳐 일궈온 그 고고한 민주화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 첨성인의 혈관에 고스란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2026년 오늘날,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나태와 오만은 우리 첨성인들이 피땀 흘려 쟁취하고 수호해 온 민주주의의 위대한 가치를 통째로 모독했다.
선관위는 ‘투표율 예측 실패’와 ‘예산 절감’이라는 행정 편의주의적 변명 뒤에 숨어 전례 없는 무능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탐구하는 우리 사학도들은 묻는다.
행정적 비용 절약이 국민의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권리인 ‘참정권’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단 말인가?
투표소에서 한 시간 넘게 줄을 서고도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던 시민들의 발걸음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시민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주권자로서의 존엄을 짓밟은, 명백한 권력의 폭거다.
소쿠리 투표 논란부터 고위 간부 자녀들의 특혜 채용 비리, 그리고 이번 투표용지 부족 대란에 이르기까지, 선관위는 ‘독립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스스로를 성역화하며 안으로 썩어 들어갔다. 철저한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이 어떻게 타락하고 무능해지는지를 우리는 오늘 선관위의 붕괴를 통해 목도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사학도들은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기록하고 시대를 고민하는 복현의 지성으로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이번 사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사학(史學)은 빛바랜 사료 속에 갇힌 죽은 지식이 아니다. 잘못된 역사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 분노하고,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서필(書筆)을 들고 행동할 때 비로소 역사는 살아 숨 쉬는 전진이 된다.
이 성명서는 경북대학교 · 본교 아카이브에 수집·검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