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대학운영위원회
2026-06-05 · 조회 23
"민주주의는 투표로 말한다" 배웠지만, 정작 말할 입을 틀어막혔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말한다" 배웠지만, 정작 말할 입을 틀어막혔다
2026년 6월 3일 진행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이 국가 기관의 무능과 오만 앞에 처참히 짓밟힌 유린의 현장이었다. 숭실대학교가 위치한 동작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주권자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다. 권리를 행사하려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행정의 오만과 무능이 빚어낸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고, 민주주의는 멈춰 서고 말았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용지의 결핍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대변할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 자체를 국가가 강제로 박탈한 명백한 헌법 유린이다.
진리의 탐구와 굴하지 않는 양심으로 정의를 실천하라고 배운바, 법의 정신이 국가 기관에 의해 무참히 훼손된 이번 사태를 결코 묵시할 수 없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은 엄중한 사회적 책임이며, 이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은 주권자의 권리이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일한 수요 예측과 행정 편의주의가 낳은 명백한 '민주주의의 실패'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3·15 부정선거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공명정대한 선거 관리라는 헌법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선거를 앞두고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기존 '전체 선거인 수의 60%'에서 '50%'로 대폭 하향한 결정은, 결국 전국 곳곳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야기하며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에 중대한 차질을 초래하였다. 전문가들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투표율을 불과 7~9명 남짓한 자치구 선거관리위원에게 맡겨 투표용지 수량을 결정하게 한 현 시스템은 그 자체로 행정의 무능을 방증한다. 나아가, 잉여 투표용지의 보안 문제를 명분으로 인쇄 기준을 낮췄다는 변명 또한 국민의 신뢰를 기만하는 지극히 부당한 논리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정면으로 훼손한 위헌적 행위에 불과하다. 잉여 투표용지가 발생함으로써 제기되는 부정선거 의혹이나 보안문제에 대해 대응하기 위함이라면 투표용지의 인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의혹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투명한 절차와 실질적인 방안을 구상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투표용지의 잉여로 인한 행정적 낭비와 투표용지의 결핍으로 인한 참정권의 박탈. 이 두 가지 문제 사이에서 무엇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전하는 길인지는 자명하다. 민주주의 앞에서 효율성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가치는 행정 편의나 비용 절감이 아닌 국민의 참정권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단 한 장의 투표용지가 남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의 국민이 투표하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은 민주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자 원칙이다.
투표용지 부족은 진영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참정권 보장 실패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투표용지의 부족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진영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국민의 참정권 보장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발생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선거 관리상의 실패이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들, 기술을 악용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여타의 논란들을 모두 배제하여도, 주권 행사의 최소한이자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실현 과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객관적 결함이며, 우리 시대가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시대적 과오이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을 비롯한 국민주권주의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에도, 선거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민주주의의 절차이다. 따라서 선거의 공정성과 참정권의 보장은 단순한 행정적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존립과 직결되는 헌법적 가치이다.
모든 통치 권력은 국민의 엄숙한 뜻에 비추어 비로소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국민주권주의의 대원칙 앞에,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운영위원회는 무너진 정의를 목도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26 지방선거 종합 관리지침 투표용지 인쇄 축소비율의 산정 근거를 비롯한 안일한 수요 예측의 경위를 명백히 밝히고, 각 투표소에 배치된 투표용지의 산출 근거와 개수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하나, 사법부는 삼권분립에 따른 독립된 권력 기구로서의 정치적 중립의 지위를 지키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판단을 고심하라.
하나, 국가는 이번 참정권 침해 사태로 실추된 선거의 공신력을 엄중히 인식하고, 무너진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선거 관리 시스템 전반의 전면적인 재정비 및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
2026. 6. 5.
숭실대학교 제42대 법과대학운영위원회
법과대학 학생회장 안초희 / 법과대학 부학생회장 김동욱 / 국제법무학과 학생회장 김주하 /
국제법무학과 부학생회장 허현준 / 법학과 학생회장 강건율 / 법학과 부학생회장 조예인
이 성명서는 숭실대학교 · 본교 아카이브에 수집·검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