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대학운영위원회
2026-06-05 · 조회 18
한 표를 빼앗긴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묻는다
한 표를 빼앗긴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묻는다
2026년 6월 3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투표용지 한 장 앞에서 멈춰 섰다.
시민이 투표소에서 마주해야 했던 것은 지연된 절차도, 부족한 투표용지도, 뒤늦은 해명도 아니었다. 투표용지 한 장이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그 당연한 한 장조차 제때 준비하지 못했다. 서울 일부 지역을 비롯한 여러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유권자들은 자신의 차례가 아니라 투표용지를 기다려야 했다. 투표소에 선 시민 앞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준비와 안일한 대응은 그대로 드러났다.
투표용지를 단순한 종이라 할 수 있는가. 투표용지는 유권자가 국가를 향해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최소한의 통로이며,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이다. 그 전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내부 기준에 따른 예측 수요를 말했다. 그러나 투표율이 높았다는 말은 변명이다. 행정적 편의나 예산 절감을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보다 결코 우선해서는 안 된다. 오판을 단순한 수요 예측 실패로 치부하는 행위는 유권자의 참정권을 가볍게 여긴 기만이며 헌법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직무유기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특정 정치 세력의 유불리가 아니다. 모든 유권자의 한 표가 동등하게 보장되었는가, 그리고 선거관리 기관이 국민의 신뢰에 부합하는 책임성과 준비성을 갖추었는가에 있다. 신뢰는 사과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책임으로 회복된다. 무너진 선거 행정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해명이 아니라 투명한 진상 규명과 실질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에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운영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다음과 같이 엄중히 요구한다.
하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발생 원인, 현장 대응 과정과 사후 조치 내역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라.
하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용지의 비상 수급 체계 및 현장 대응 매뉴얼을 전면 재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하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정치적·행정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
민주주의의 침묵 앞에서, 우리는 더 큰 목소리로 되물을 것이다. 빼앗긴 권리는 가만히 앉아서 되찾을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능이 빚어낸 이 참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무너진 선거 시스템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복원되는 그날까지 목소리를 낼 것이다.
2026년 6월 5일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운영위원회
이 성명서는 고려대학교 · 본교 아카이브에 수집·검수되었습니다.